나의 이야기

화양구곡

새터 노인 2010. 7. 26. 16:01

  2010년 7월 25일 아침 7시 50분 쯤 집을 나서 이 교감 댁으로 향했다. 어제 저녁 때 아내와 정안천에 연꽃 구경을 하러 갔다. 정안천 꽃 길을 다 돌아보지 못하고 반쯤에서 다시 되돌아오고 있는데 이 교감에게서 전화가 왔다. 청남갔다가 막걸리를 사왔으니 자기네 집으로 오란다. 우리는 벌써 금강을 건너 우체국 근처까지 와 있었다. 다시 돌아가기도 그래서 내일 만나 등산이나 가자고 했다. 내일 아침 8시까지 이교감 댁으로 가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니 아내는 벌써 일어나 점심 도시락 준비 등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침을 먹고 7시50분경 집을 나서 신관동 이 교감댁으로 향했다. 이 교감댁에 도착하니 내외가 대문 밖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차를 신관동사무소에 주차하고 이 교감 차에 올라 목적지인 화양구곡으로 향했다. 화양구곡은 충북 괴산에 있는 계곡으로 속리산에 속하는 골짜기다.

   공주를 떠나 세종시를 지나 청원 IC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였다. 내비게이션이 상주 고속도로로 가라고 가리킨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방향을 무시하고 경부고속도로를 계속 달려 중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증평IC에서 나와 괴산으로 향하여야 될 것 같았지만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서청주 IC에서 고속 도로를 빠져나왔다. 서청주 IC에서 나오니 내비게이션은 다시 대전 보은쪽으로 안내한다. 아차! 실수 했구나! 그 복잡한 청주 시내를 빠져나오면서 후회를 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가야만 했다. 상주 방향의 고속도로로 방향을 틀었으면 복잡한 청주 시내를 통과하지 않고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대로 청주 시내를 빠져나오니 이정표에는 대전, 보은, 문의 등이 보인다. 한 참을 가다가 보은과 괴산이 갈라지는 곳에서 괴산 충주 방향으로 차를 몰고가니 괴산군 청천면이 나왔다. 청천면 소재지가 사람들로 복잡하다. 아마 오늘이 청천 5일장인 듯하다. 옥수수가 시장 여기 저기에 쌓여있는 것을 보고 아내가 옥수수를 사갔으면 좋겠단다. 차에서 내려 시장 구경이나 하고 싶었지만 이따 오다가 들려 옥수수도 사고 시장구경도 하자고 하면서 오늘의 목적지인 화양구곡을 향해 달렸다. 

  우리가 향하는 화양구곡이 바로 괴산군 청천면에 속해있다. 이제 거의 다 왔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가니 화양구곡 야영장 주차장에 도착되었다. 10시 조금 넘었을까?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차는 별로 많지 않았다. 버스 서너대에 자가용이 주차장의 3분의 1정도 차있었을까?  버스에서 내린 등산객들이 줄지어 화향구곡 골짜기를 향해 걸어 갔다. 우리도 2,000원 주차비를 내고 배낭을 둘러 메고 산 골짜기로 들어섰다. 화양구곡은 기암괴석 등 아름다운 경치가 9군데 있는 골짜기란다.

 

 

   제1곡 경천대는 주차장에 오기 전에 차안에서 이미 보았고  조금오르니 제2곡 운영담이 나타났다.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하여 운영담이라고 한단다. 운영담 앞에는 산골치고는 넓은 내가 흐르는데 백사장도 있고 운영담 바위 아래는 제법 깊어 보이는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수영 금지'라는 표지판이 있고 들어 가지 말라는 경계선이 줄로 늘어서 있지만 피서객들이 그  곳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위험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계곡을 올랐다.

 

 운영담

  운영담 윗쪽에 희고 둥글넓적한 바위가 나타났다. 그 바위에는 움푹움푹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가 여러 개 있었다. '우암 송시열이 제자였던 임금 효종이 죽자  매일 새벽마다 이 바위에 올라 엎드려 통곡하였다.' 하여 후일 사람들이 제3곡 읍궁암이라 불렀단다읍궁암 옆에는 친명 반청주의자였던 송시열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을 해준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만동묘와 화양서원이 있었다

 

만동묘  

 화양서원 

 읍궁암

  화양서원을 뒤로 하고 조금 더 오르니 제4곡 금사담과 암서재가 나타났다. 맑은 물 속에 보이는 모래가 금싸라기 같다하여 금사담이라 하고 암서재는 1666년 송시열이 바위 위에 지은 것으로 이 곳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후진을 양성했단다.

 

 금사담과 암서재

  조금 더 오르니 골짜기 건너  도명산 기슭에 바위를 여러 층 쌓아올린  층암이 나타났다. 이 층암은 경치가 좋을 뿐더러 평평한 큰 바위가 첩첩이 겹치어 있고  치솟은 높이가 수십 미터이며 그 아래 "비례부동"이란 의종의 어필이 새겨져 있단다. 사람들은 이 층암을 제5곡 첨성대라 부른다. 

 

첨성대 

   제6곡 능운대는 보지 못하고 조금 오르니 제7곡 와룡암이 있었다. 이 와룡암은 바위 모양이 용이 꿈틀 거리는 듯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와룡암 밑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던 아주머니들이 들어 오라며 옥수수를 주었다. 옥수수를 받아 먹고 이 교감 사모님이 싸 가지고 간 쑥떡을 대신 주었다.  아주머니들은 부산에서와 1박을 하고 이 곳에서 다슬기를 잡아 끓여 먹기도 하였단다. 옥수수 쑥덕 등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오르니 내 건너 도명산으로 가는 다리가 나타났다. 그 곳에는 제8곡 학소대 안내판이 있었다. 옛날에 이 곳에서 백학이 집을 짓고 새끼를 쳤다 하여 이름을 학소대라 한단다.

 

 와룡암

 학소대

  우리는 도명산에 오를까 생각하다 9곡 중 마지막 파천에 다녀 오기로 하고 다시 걸어 갔다. 학소대는 파천을 보고 내려와 도명산으로 갈 때 보기로 했다. 얼나 가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다리가 아플 정도를 걸어도 나오지 않았다. 지루함을 참고 한 참을 오르니 파천이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큰 돌을 듬성듬성 박아놓았다.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커브를 이루며 나 있는 길이 50여m 될까 내려가니 골짜기에 마당 모양의 넓고 평평한 흰색 바위가 나타났다. 이 흰색 바위에는 움푹움푹 파여져 있는데 마치 파도의 물결 같은 모양이다.  이 곳이 제9곡 파천이다. 파천에는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와 있었다. 커다랗고 넓은 돌 틈 사이로 제법 깊은 소를 이루며 물이 흐르고 있다.  

 

 파천

  우리는 싸 가지고 간 점심을 먹기로 하고 넓은 바위를 찾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두둑우두둑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조금 내리다 말겠지 하면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더 이상 점심을 먹을 수 없어 두리번 거리며 비 피할 곳을 찾는데 냇가에 집 한채가 보였다. 그 집은 스라브 양옥으로 20평 남짓 될 것 같다. 처마 밑으로 간신이 몸을 피하고 보니 속리산탐방안내소라는 간판이 보인다. 혹시나 하고 문을 열려고 하니 굳게 문은 닫혀있다. 제법 잘 지어진 집이지만 사람은 없다.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비가 그쳐 밖으로 나오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도명산에 오르기는 틀린 듯하여 우리는 선유구곡에 가기로 했다.

  비가 그치는 듯하여 처마 밑에서 나와 다시 내려가려고 숲길을 들어 서는 데 아내가 이것 쯤 보란다. 두꺼비가 있단다. 한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다. 산진을 찍어도 도망도 가지 않는다. 눈만 껌벅껌벅한다. 비가 오니 좋아서 나왔나 보다. 두꺼비 사진과 숲 속에서 자라는 버섯 사진 몇 카드를 찍고 내려왔다. 비는 그치고 햇살이 다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