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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 다녀왔어요.

새터 노인 2014. 7. 6. 09:52

  2014년 7월 5일 토요일 아내와 같이 경기도 성남시, 광주시, 하남시에 걸쳐 있는 남한산성에 다녀왔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도립공원으로 백제시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 국방의 보루로써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성이란다. 해발 500m가 넘는 험준한 자연지형에 11.7km에 달하는 성곽으로 4대문, 5개의 옹성, 16개의 암문등이 있단다. 남한산성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신청이 되었으며 역사와 문화 자연이 조화된 고품격 문화 유적지란다.

  7월 5일 8시경에 집을 나와 남한산성을 향해 출발했다. 정안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서울순환고속도로 성남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나와 성남 시내 구간을 통과했다. 시내버스들이 뒤엉켜 복잡했지만 생각보다는 교통흐름이 월활했다. 시내를 벗어나 2차선 산비탈 도로를 오르는데 도로의 폭이 너무 좁아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어느 정도 오르자 등산객들이 보인다. 차는 산성의 남문 아래 산성터널을 통과하여 성안으로 들어갔다. 터널을 지나자 도로변에 주차한 차들이 보이고 등산객들이 보인다. 조금 내려가니 음식점 건물이 보이고 유료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주차요금은 1,000원을 받는다. 주차요원에게 남한산성을 한바퀴 돌고 싶다고 하자 북문쪽을 가리키며 그 곳으로 오르란다. 

  북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왼쪽으로 몇 채의 초가집이 보인다. 매표소도 보인다. 남한산성행궁이다. 산성을 먼저 돌아보고 행궁은 산성에 다녀와 둘러보기로 하고 북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행궁전경>

  북문을 향해 걸어가는 길가 양쪽에 기와집들이 보인다. 이 기와 집들은 음식점이다. 단체 환영이란 표지판과 아울러 족구장도 마련되어 있단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길을 오르자 앞에 성벽이 보이고 문이 서있다. 다듬어진 돌로 쌓은 성벽 위에 기와집의 누각이 서있는데 현판에 전승문이란 글이 보인다. 정승문 누각 아래는 사람이나 수레 정도만 통과할 수 있는 아치형의 통로가 있다. 통로를 통해 성밖으로 나가 보았다. 성밖에 성벽을 따라 길이 나있다. 성안쪽 성벽을 따라 성곽 주위를 걷기로 하고 성안으로 들어왔다.  

<북문>

  북문(전승문)에서 북장대터에 오르는 길은 경사가 있고 돌 계단도 있다. 성곽의 안과 밖 모두 길이 있는데 밖으로 다니는 사람들은 얼마되지 않고 성곽 안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또한 차도 다닐 수 있는 시멘트 포장길이 보인다. 시멘트 길로 가면 가깝다고 하면서 시멘트 길을 따라 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성곽을 따라 걷기로 하였다. 복장대터에 오르니 전면에 시가지가 보이고 동쪽으로 길게 뻗은 성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저기 붉은 색 줄기의 소내무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싱그러운 초여름 경치를 만끽하며서 성곽길을 걸었다. 산의 수풀속에 빨간 딸기들이 맺혀있다. 아내가 딸기를 따 입안에 넣어준다. 달콤하고도 시콤한 맛이다.    

<소나무>

<성곽>

<성곽>

  성곽을 따라 걷다가 산줄기를 따라 성곽이 앞으로 툭 튀어나간 곳을 보았다. 지도를 살펴보니 연주봉옹성으로 가는 길이다. 성곽 아래 암문이 있고 암문을 통과하여 옹성으로 간다. 남한 산성에는 이러한 옹성이 5개가 있단다. 우리는 옹성으로 가지 않고 본성의 성곽을 따라 계속 걸었다.    

 

 

<연주봉옹성으로 가는 길>

  성곽을 따라 걷다가 매탄지라 쓴 표지석을 보았다. 이 매탄지는 숯을 굽던 곳이다. 매탄지 표지석 성곽 넘어에는 전망대가 있고 이 전망대에서는 성남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매탄지전망대>

  소나무 숲 여기 저기에 의자와 탁자가 놓여있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소나무숲에 자리를 깔고 누워쉬고 있다. 우리도 앉아서 쉴 곳을 찾다가 앉기에 좋은 돌 위에 앉아 아내가 싸가지고 간 참외을 깎아 먹었다.

 

 

<성곽>

 성곽을 따라 걷다가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 아래 남한 산성 본성이란 표지판이 서 있다. 이 성벽은 오래된 성벽으로 담쟁이 넝쿨이 자라고 있다.

<본성>

  숲 사이로 건물의 기와 지붕이 보였다. 어떤 건물인지 살펴 보기로 하고 언덕을 올랐다. 청량당과 수어장대가 자리잡고 있다.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의 누각으로 남한산성에 있던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단다. 이 곳은 청량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2층의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다. 영조 27년에 2층 누각으로 중건하고 서장대 내부에 무망루(無望樓)라는 편액을 설치하였다 한다. 현종 2년에 고쳐지으며 외부에 수어장대(守御將臺)라는 편액을 달았단다.

  수어장대 바로 아래 건물이 하나 있는데 문이 잠겨있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 건물이 청량당이란다. 청량당은 축성의 책임자로써 억울한 모함으로 교수형을 당했던 이희의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이란다. 이 곳에는 이희 장군과 그의 부인 송씨, 벽암대사의 초상화가 안치되어 있단다.

<수어장대>

<청량당>

  수어장대에서 내려오니 숲속에 돌 구조물이 보인다. 사방 5m 정도의 정사가형 둘레에 주춧돌로 쓰인 듯한 돌 구조물들이 둘러 있고 가원데에는 지름이 2m 정도는 될 듯한 원형의 탁자가 돌로 조각되어있다. 무엇인지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고 설명판도 볼 수 없다. 

 

  수어장대에서 남문에 가는 길은 가파른 길이다. 나무로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남문 누각까지 간 우리는 남문 아래로 내려 갔다. 남문에는 지화문(至和門) 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지화문 아래에는 성안으로 통하는 산성 터널이 뚫려 있다. 길가에 주차선이 그려져 있고 차들이 길가에 주차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이 곳부터는 성문을 나와 성곽 밖의 둘레를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남문>

<남문>

  남문에서 약간의 오르막 길을 올랐다. 오르막이 끝나자 의자가 보여 아내와 나는 의자에 앉아 과일을 깎아 먹으며 잠시 쉬었다. 다시 길을 걷는데 공사 현장이 나온다. 성이 무너져 있고 붉은 흙들이 나와있다. 중장비도 보인다. 문화재 발굴 중이란다. 이 곳이 제1남옹성이다. 남한산성 남쪽으로 옹성이 3 개가 있다. 제1남옹성, 제2남옹성, 제3남옹성으로 부른다. 모두가 발굴중이다. 제1남옹성 공사 현장을 떠나 조금 내려오니 시멘트 포장의 갈림길이 있고 넓은 공터도 있다. 검단산으로 가는 길과 성으로 가는 길이다. 트럭을 몰고 와 장사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드문드문 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다. 사람들이 음식으 ㄹ사서 먹고 있다. 아내가 순대를 사 먹자고 하여 순대와 막걸리를 샀다. 순대는 5,000원  막걸리는 한 잔에 2,000원이다. 의자에 앉아 잠시 쉬면서 막걸리와 순대를 먹었다. 탁자 위에는 된장, 양파, 멸치가 담겨 있는 프라스틱 그릇이 놓여 있다. 막걸리 안주인가보다. 순대와 멸치 양파를 안주로 막걸리 한 잔 씩 먹었다. 아내는 술이 취한단다. 잠시 쉬기로 했다. 이 곳에서는 검단산으로 가는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검단색 정상에는 방송안테나인지 통신 안테나인지 구조물이 서 있다.    ㅣ

<검단산 갈림길>

  검단산 갈림길에서 성쪽으로 길을 걷다 조금만 암문이 보인다. 암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암문을 통과해 나왔다. 암문 바로 옆에 자동차가다니는 길이 있다. 자동차가 다니도로 성곽을 허물었나 보다. 지도에는 이 곳이 남장대터로 표시되어 있다.    

<남장대터 암문>

  남장대터에서 다시 동문을 향해 출발했다. 오르락 내리락 하며 길을 걷다가 성밖의 제2남옹성, 제3남옹성을 바라보았다. 남옹성 건너 검단산이 보인다. 산속에 작은 마을도 보이는데 이 곳이 서울 근교같지 않은 풍경이다. 마치 강원도의 어느 산골 같은 느낌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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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성 발굴 현장>

  옹성을 지나 드디어 동문에 도착했다. 이 곳에는 광주 방향에서 올라오는 자동차 길이 있다. 아내와 나는 동문에서 북문 구간 탐방은 남겨 놓기로 하고 성안 주차장을 향해 길을 걸었다.

<동문 도로>

  성안으로 가는 2차선 도로는 차들이 줄을 서서 움직이고 길 양쪽으로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연못과 정자가 보인다. 연못이 두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위 연못에는 정자도 서 있다. 연못에는 팔뚝보다는 굵은 잉어들이 헤엄친다. 연못가에 물고기 먹이를 파는 가게도 있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주차장 옆의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꽤 크지만 방은 예약이 되어 있는지 밖의 식탁에 앉으란다. 밖에는 파라솔 밑에 식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산채 비빕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1인분에 9,000원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행궁으로 향했다. 초가지붕의 매표소에서 표를 샀다. 입장권은 1,00원이란다. 표를 구입하고 정문인 한남루로 향했다. 개찰원에게 표를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 가려는데 해설을 들으란다. 개찰원 옆에 70이 넘어 보이는 자그마한 키의 하얀 중절모를 쓴 노인이 열심히 해설을 하고 있다. 남한 산성의 역사, 행궁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조선 인조 4년에 건립했단다.  인조 14년 병자호란 당시 47일간 이 곳 남한산성에서 항전하였단다. 그후로도 숙동, 영조, 정조, 철종, 고종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기도 하였단다.  남한산성행궁은 종묘와 사직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으로 유사시 임시 수도의 역할을 했단다. 궁궐은 3대문이 있으며 3대문안에 외행전과 내행전이 있단다.  

<한남루>

  한남루에서 설명을 마친 해설자는 외삼문 안 사진 전시장에서 다시 해설을 시작한다. 사진은 흑백 사진으로 2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설명을 듣다 덥기도 하고 지루하여 외행전과 내해전을 둘러보고 궁 밖으로 나왔다.  

 

<외행전>

<내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