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씨동굴, 하조대, 낙산사, 설악산 등 강원도 일원을 다녀 왔어요
2011년 8월 4일과 5일 공주시교감들과 같이 강원도 일원을 다녀왔다. 공주에서 8시경 출발한 버스는 청원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진입후 중부고속도로를 달려 일죽 나들목에서 충주 방향으로 달려 영월 고씨동굴에 도착했다. 12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점심식사를 하고 고씨동굴을 둘러보기로 하고 고씨동굴의 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사무국장에 의하면 오후 1시 30분이 고씨동굴 입장 시각이라한다. 점심을 먹고 그늘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쉬었다.
<고씨동굴 매표소>
오후 1시 10분쯤 고씨동굴로 건너가는 다리인 고씨교를 건넜다. 고씨교의 오른쪽 난간 하단에는 만화가 그려져있다. 영월의 관광지에 대한 소개와 김삿갓에 대한 이야기가 만화형식으로 그려져있다. 고씨굴안으로 들어가니 먼져와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이 굴안에 들어가 있었다. 안내하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란다. 시간이 되어야 기다릴 수 있단다. 우리는 입구에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고씨굴은 좁아서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할 수 없단다. 그래서 시간대 별로 입장을 시킨단다. 고씨굴 안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잠시 기다리다. 입장을 시킨다. 헬멧을 쓰고 굴안으로 들어갔다. 굴안에는 갖가지 형상을 한 종유석이 있다. 이 고씨굴은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임진왜란 당시 고씨 가족들이 한 때 그 곳에서 피난하였다하여 고씨굴이라 한단다. 고씨굴안에는 실질적으로 고씨들이 머물렀다는 고씨거실이란 곳이 있다.
<고씨굴교>
<고씨굴 입구>
고씨굴로 들어서면 갖가지 모양의 종유석뿐만 아니라 물이 흐르는 곳도 있다. 굴밖의 시내와 마찬가지로 제법 우렁찬 소리를 내며 지하수가 흐른다. 작은 폭포가 있기도 하고 작은 연못이 있기도 하다. 제법 넓은 광장도 있고 앉아서 걸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좁은 곳도 있다. 그래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들여보내지 않는가 보다. 한 쪽에서 사람이 가면 다른 쪽의 사람들은 기다렸다 통과해야 한다. 헬멧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린다. 헬멧을 쓰지않으면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다녀 나오는데 1시간 가량걸리며 밖에 나오니 이마에 땀이 맺혀 있다. 세수를 하고 화장실에 들린 후 버스있는 곳으로 이동후 버스에 올랐다.
<고시굴 내부>
고씨굴 주차장을 출발한 버스는 영월 읍내와 31번 국도가 통과하는 평창군을 거쳐 장평 IC에서 영동고속도로에 접어 들어 속초로 향했다. 2시경에 고씨굴을 출발한 버스는 5시가 넘어 하조대에 도착했다. 국도를 달리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평창휴게소에 들려 하조대까지 까지 달리는데 차창가에 펼쳐지는 대관령의 푸른 경치들이 아름답다. 길가의 밭에서는 옥수수와 무우, 배추 등이 자라고 멀리 백두대간 산마루의 풍력발전소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모습도 보인다.
<평창 휴게소>
하조대에 도착했다. 하조대는 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에 위치안 암석해안으로 2009년 12월에 명승 제68호로 지정되었다한다. 하조대의 명칭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조준과 하륜이 잠시 이 곳에서 은거하였다하여 두 사람의 성을 따 하조대라 불렀다 한다. 하조대에는 주차장이 따로 없다. 길가에 세워 둔 차로 인해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가 진입하기에 어려웠다. 하조대에는 왼쪽으로 가면 암석 위에 등대가 서 있고 오른쪽에는 정자가 서 있다. 왼쪽 등대로 가는 길은 다리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노란쌕을 칠해 주위의 녹색과 어울린다. 등대에 도착하니 멋진 바위와 바다위에 솟아있는 기암 괴석들이 반긴다. 기암위에 서 있는 푸른 소나무가 주위의 풍경과 어울러져 멋지다. 동해의 망망대해에 떠 가는 어선이 보일동 말동 바다 속에 잠겼다 나왔다 한다. 등대에서 왼쪽에 있는 정자로 오르는데 빗방울이 우두둑 우두둑 떨어진다. 뛰어서 정자에 올랐다. 정자에 들러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데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은 금새 굵은 비가 되어 내린다.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 버스까지 뛰기로 하고 고개 위로 달려갔다. 버스는 고개 넘어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와 옷이 약간 젖었지만 버스에서 나오는 에어컨 바람으로 젖은 머리와 옷은 금방 말랐다.
<하조대 팔각정>
하조대 관람을 마치고 낙산사로 향했다. 낙산사는 전에도 몇 번 들렸던 곳이다. 강원도 양양 일대에 큰 불이 나고 낙산사도 불에 타 헐벗은 산에 소나무를 옮겨 심는 작업과 낙산사 건축물을 한 참 복원할 무렵 다녀온 적도 있다. 불에 탄 소나무가 나 뒹굴고 키퀘한 재 냄새가 낙산사 경내를 진동했을 때였다. 낙산사에 불이 난 것이 벌써 6년이 지났단다. 오랫만에 낙산사에 간다니 절이 얼마나 복원되었는지 나무는 얼마나 어우러 졌는지 궁긍도 하였다. 차는 낙산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다른 때도 그랬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충남상회 앞에 주차한다. 충남상회는 건어물을 파는 가게다. 공주의 버스들이 낙산사에 들리면 꼭 충남상회 앞에 주차를 한다. 차에서 내려 낙사사로 가는 언덕길을 올라갔다. 올라가는 오른쪽에 호텔(유스호텔)이 서 있다. 산 여기 저기에 옮겨 심은 소나무들이 제법 잘 자라고 있다. 아직도 옮겨심을 때 나무를 지탱하기 위해 세워 놓은 지주들은 그대로 있다.
<낙산사 배치도>
홍예문 앞에 도착했다. 홍예문은 성처럼 돌로 쌓고 그 위에 누각을 설치했다. 홍예문 밖에는 낙산사에 대한 안내문과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홍예문을 들어서 20여m 가면 원통보전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원통보전에 오르기 위해 사천왕문을 통과하고 사천왕문 바로 뒤에 빈일루가 있고 빈일루를 통과하면 원통보전이 보인다. 원통보전 앞에는 7층 석탑이 서 있는데 7층 석탑의 각 층 모서리가 깨져있다. 원통보전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고, 왼쪽 건물은 종루이며 종이 달려있다. 화재 때 보물제 479호인 동종은 녹아 내렸다 한다. 아마도 지금 종각에 매달려 있는 종은 다시 만든 종인가 보다. 오른쪽으로 해수관음상을 가는 길이라쓴 표지가 서 있다. 멀리 해수관음상이 보인다. 원통보전에서 해수관음상이 서 있는 곳까지는 산 비탈에 펑퍼짐하게 길이 나있어 걷기에 좋다. 식재해 놓은 소나무 사이사이에 도라지 꽃이 많이 피어 있다. 아마도 도라지씨를 뿌려 놓지 않았나 싶다. 보라빛의 도라지 꽃과 여기 저기 나있는 붉은 해당화 열매들이 어울러져 있다. 지나가는 관광객이 해당화 열매를 보고 방울도마토 같다고 한다.
<홍예문> <사천왕문>
<원통보전>
해수관음상은 46척이나 되는 동양 최대의 거불이라 한다. 해수관음상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해수관음상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보타전이 있고 보타전 앞에는 2층의 누각인 보타락이 서 있다. 그 앞에는 연못이 있는 데 연 못에는 수련들이 자라고 있다. 연못의 중앙에는 나무가 자라는 작은 섬도 만들어 놓았다. .
보타락 앞의 연못을 지나 왼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의상대가 보인다.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의상대는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같다. 동해의 푸른 물과 멋진 소나무가 어울러져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의상대에서 홍련암으로 가는 길 아래는 파란 바다로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가 흰 물거품을 만들어 놓는다. 홍련암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 서 있다.
의상대와 홍련암을 뒤로 하고 의상기념관이란 박물관을 구경했다. 박물관에는 많은 불교 유물과 함께 화재 때 타다 남은 건물들의 나무도막, 기와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기념관에서 나와 낙산사 후문으로 나오니 오른쪽에 호텔(낙산비치호텔)이 있고 왼쪽 바닷가에는 넓은 백사장과 가게 음식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 곳이 낙산 해수욕장이다. 후문으로 나와 가게와 음식점이 즐비하게 서 있는 곳을 걸어 주차장으로 오니 건어물 가게에 막걸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건어물 가게주인이 얼마든지 막걸리를 먹으란다. 막걸리 한 잔을 먹고 건어물 가게의 건어물 등을 구경하였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5시가 되니 휴대폰의 알람이 울린다. 늦게 들어온 주교감이 깰까봐 조심조심 모텔을 나섰다. 어제 늦게 모텔에 도착하여 우리가 숙박한 장소가 설악동의 어디인지 분간을 못했기 때문에 밖을 산책하기 위해 모텔을 나섰다. 모텔 앞 길 건너에는 설악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흐르는 시내가 흐른다. 수량이 제법 많은지 물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길을 따라 조금 오르는데 이곳이 설악산 숙박업소 C 지구란다. 설악산 입구 주차장인 소공원까지는 2.5km 되며 37분이 걸린단다. 소공원까지 산책을 하기로 하고 길을 걸었다. 왼쪽으로 나있는 인도에 몇 몇의 사람들이 걸어 간다. 뛰는 사람들도 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시내의 크고 작은 돌들을 부딪치며 흐르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시내의 폭이 제법 넓다. 50여 m는 될 듯하다. 시내의 중앙에 섬이 있고 섬위에 자라는 나무들이 시내와 어우러져 아름답다. 조금 오르니 숙박업소들이 있고 제법 큰 호텔도 보인다. 사우나가 있는 호텔이다. 왼쪽 숲에 작은 탑 하나가 서 있다. 향성사지3층 석탑이란다. 보물 제443호로 향성사는 현재 신흥사의 전신이란다. 시내 건너 설악산의 암봉들이 눈에 들어온다. 암봉 사이로 쏟아지는 폭포의 물줄기가 멀리서도 장엄하게 보인다. 가까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도 버스를 타고 본 적이 있다. 언젠가는 한 번 가보겠다고 다짐도 해 본다. 설악산의 상봉의대청봉이다. 의당초등학교에 근무 시절 오색 약수에서 자고 새벽에 대청봉에 오르기 시작해 점심 때 대청봉 정상에 올랐던 적이 있다. 대청봉 정상에서 컵 라면을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컵라면 국물에 싸 가지고 간 김밥을 담가먹던 기억이다. 지금까지도 가장 맛있는 컵라면과 김밥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어찌나 어렵던지 다리라도 다쳐 헬기가 실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중청봉을 거쳐 성악동으로 내려오는데 그 골자기가 왜 그리 길었던지 주저 앉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설악동 계곡을 내려왔었다. 대청봉 상봉에는 잔설이 남아 있어 아이젠을 사기도 했었다. 5월 이었던가 아무리 내려와도 끝이 없어 시계를 보았을 때 9시가 넘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주위가 어둡지 않아 하늘을 쳐다보니 달이 걸려 있었다. 달이 뜨지 않았다면 내려 오지도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때 고생했었던 기억 때문에 지금은 대청봉에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한다.
<향성사지삼층석탑>
설악산 매표소 앞인 소공원에 도착하니 주차장 관리인들이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숙소로 되돌아 오는데 같이 갔던 여 교감 두 사람이 올라온다. 나보고 부진런하단다. 안녕히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오니 주교감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에 주교감이 돌아왔다. 일어나 보니 8시가 넘은 줄 알았단다. 다 떠난 줄 알았단다. 그런데 시계를 잘 못 본 것이란다. 아직 7시가 채 못 되었다.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아침 먹으라는 연락이 왔다. 7시 반에 아침식사를 하고 8시 쯤 모텔을 떠나 설악산 권금성에 오르는 케이블카를 타러갔다. 8시 10분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올랐다. 전에 아내와 같이 왔을 때 사진을 찍었던 생각이 난다. 지금도 즉석 사진을 찍어 준다고 사진사가 대기하고 있다. 지금도 집에 그 때 찍었던 사진이 보관되어 있다. 권금성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의 암봉들은 장관이다.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있고 갖가지 형상을 떠 오릴 수 있는 기암 괴석들이 즐비하다. 권금성 정상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어떤 아저씨가 권금성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권금성에 오르려다. 포기하고 잠시 쉬었다가 권금성을 내려왔다.
권금성에서 내려온 우리는 신흥사를 보기로 하고 신흥사로 향했다. 설악산 신흥사란 일주문을 지나니 거대한 좌불상이 서 있다. 설악산 신흥사 통일 대불이란다. 대불을 지나 세심교와 극락교를 건너 신흥사로 향했다. 신흥사 사천왕문 안으로 들어갔다. 사천왕문을 지나 보제루를 거쳐 마당에 들어서니 신흥사의 중심 극락보전이 서 있다. 신흥사 전각등을 구경하고 상가 지역으로와 몇몇의 일행과 맥주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