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19일 아침 9시경 아내와 같이 집을 나섰다. 배낭에 점심과 약간의 간식 그리고 물을 넣고 차에 올라 상신리로 향했다. 상신지구는 전에도 여러 번 가 본 곳이다. 그 곳에서 도토리와 상수리를 주어다 묵을 해 먹기도 하고, 밤도 주었던 적이 있으며, 어느 핸가는 모르지만 으름도 딴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먼 곳은 교통이 막힐 것 같아 인근 가까운 곳에 등산을 가기로 했다. 상신 지구에서 으름을 땄던 기억이나 혹시 으름이 익어 벌었나 하고 상신리를 택했다.
지금은 폐교된 상신초등학교 운동장에 주차를 했다. 폐교 교사 건물에 도자기 체험장이라 써 있고 교사 뒷 편에 새로운 건물을 짓기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신축 건물을 짓고 있는 곳이 상신초등하교가 폐교되기 전에 학교 숙직실 이었던 것 같다. 상신초등학교가 폐교되고 공주 학생 야영장 시절에 학생들을 데리고 그 곳에서 야영을 한 적이 있다. 폐교된 운동장에 주차를 하고 상신 정류장과 국립공원 관리 초소를 지나 계곡에 들어섰다. 다른 어느 해 보다도 비가 많이 내려 물 흐르는 소리가 힘차다. 길 양쪽으로 분홍색의 물봉선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길가의 담장에 뻗어있는 으름 덩굴에 으름이 맺혀 있었다. 으름은 아직 벌지 않았다. 너무 일찍 왔구나. 으름이 벌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9월 말은 지나야 으름이 벌어질것이라며 길을 걸었다. 조금 오르다 지금은 농사를 짓지 않아 칡덩굴로 가득찬 밭 가장자리에 있는 커다란 돌에 걸터 앉아 포도를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1000여 평 될 듯한 밭은 가꾸지 않아 감나무, 복숭아 나무 등 과일 나무 위로 칡덩굴이 휘감고 밭 전체가 칡덩굴로 가득하다. 과일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전에 왔을 때만 해도 누런 감이 주렁주렁 열렸었는데, 가꾸지 않아 황폐화되어 가는 밭이 황량하다.
<물봉선>
조금 쉬다가 다시 배낭을 메고 계곡을 올랐다. 숲이 우거져 길 위로 터널을 이룬다. 서너 쌍의 부부인 듯한 등산객들이 산에 오른다. 숲 속 골짜기에는 크고 작은 돌 틈 사이로 우렁찬 소릴 내며 물이 흐른다. 2km 쯤 올랐을까? 갈림길이 나온다. 금잔디 고개 1km, 남매탑 0.9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남매탑, 금잔디고개 갈림길 이정표>
아내가 "어디로 갈꺼야?" 하며 묻는다. "응, 금잔디 고개로 가자. 남매탑에서 삼불봉 고개까지 오르는 길이 가파르니 금잔디 고개로 가자." 하면서 앞서 가는 아내를 불러 계곡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싸가지고 간 만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어제 큰 딸 준미가 사가지고 온 만두다. 하루가 지났지만 변하지 않았다. 고기 만두다. 등산하면서 먹는 만두라 그런지 집에서 먹을 때 보다 더욱 맛있다. 계곡을 오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땀깨나 흘렸다. 계곡의 시원한 물로 세수도 하였다.
금잔디 고개를 향해 산을 올랐다. 산 속에 돋아난 여러 종류의 버섯을 사진에 담으며 길을 걸었다. 200여 미터 올랐을까 돌로 석축을 쌓은 구조물이 보인다. "암자터였나보다" 하면서 가까이 가보았다. 병풍처럼 둘러처진 바위 아래 50여평 될까하는 그리 넓지 않은 판판한 터가 있다. 시멘트를 발라 놓았던 흔적도 보인다. 아주머니 두 분이 다가온다. 두 분 중 한 분이 이야기 한다. 1년에 한 번씩 자기들 모임에서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 이 곳이란다. 이 곳에서 남자들은 산신제를 지내고 여자들은 등산을 한단다. 아마 산악회 모임인가 보다. 산에 가면 종종 산악회에서 산신제를 지내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어느 산이었던가 산신제 지낸 막걸리 한 잔과 떡 한 조각을 얻어 먹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암자터로 보이는 곳>
조금 오르니 금잔디 고개까지 500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리 가파르지 않지만 계속 오르니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버섯 사진을 찍으며 오르는 데 아내가 " 바람 사진도 찍으란다." "바람 사진을 어떻게 찍어." 하면서 오르는데 고개마루에서 한 줄기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어준다. 시원하고 상쾌하다. 산마루에는 예닐곱 명의 남녀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 고개에서 조금 내려가다 다시 오르니 금잔디 고개다. 이 곳은 갑사에서 오르려면 돌 계단이 많아 힘이 들던 곳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이곳 저곳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여기 저기 다니며 이름을 적확히모르는 야생화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의 타임을 맞춰 놓고 아내와 같이 사진을 찍었다. 싸 간 점심도 먹었다. 반찬은 없지만 늘 그랫듯이 산에서 먹는 밥은 맛있다. 점심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며 한 참을 쉬다가 1시경이 되어 남매탑을 향해 걸었다. 이 곳은 길에 돌을 깔거나 돌로 계단을 만들어 걷기가 힘이 든다. 삼불봉 고개에 오르니 삼불봉이 200m 란다. 삼불봉에 오르기로 하였다. 삼불봉에 오르는 길은 철 계단으로 되어 있다.
<금잔디 고개에서 삼불봉 고개에 가는 길>
<삼불봉에 오르는 철 계단>
드디어 삼불봉에 올랐다. 전망이 확트여 보인다. 우리가 오르기 시작했던 상신리 마을이 보인고 천황봉도 보인다. 높은 산꼭대기의 나무들은 단풍을 준비하는 듯 푸른색이 조금 바래 보인다. '단풍이 들려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면서 확 트인 사방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이 곳 삼불봉은 계룡 팔경 중 제2경이다. 삼불봉 설화 안내판이 보인다. 산의 생김새가 세 부처님을 닮아 삼불봉(775m)이라한단다.
<삼불봉 설화안내판>
<삼불봉에서 아내와 찰칵>
<삼불봉에서 관음봉으로 가는계단>
삼불봉에서 오를 때 반대편 계단을 내려와 다시 삼불봉 고개로 왔다. 삼불봉 고개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오면 남매탑이다. 남매탑은 옛 청량사터에 세워진 두 개의 탑으로 하나는 5층, 다른 하나는 7층으로 청량사지 쌍탑이라고 불리우며 전설이 남아있다.
통일 신라 시대에 한 스님이 토굴을 파고 수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호랑이가 나타나 울부짖으며 입을 벌리는 것이었다. 스님이 입속을 자세히 보니 큰 가시 하나가 목구멍에 걸려 있어 뽑아 주었다. 며칠 뒤 호랑이는 아리따운 처녀를 업고와 놓고 갔다. 처녀는 상주 사람으로 혼인을 한 날 밤 호랑이에게 물려 여기 까지 왔단다. 그 때는 산에 눈이 쌓이고 추운 겨울이었다. 봄이 되자 처녀를 집으로 돌려 보냈으나 처녀의 보모는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낼 수 없다. 하고 수도승과 혼인하기를 청했다. 이에 스님은 고심 끝에 처녀와 남매의 의를 맺고 불도에 힘쓰다 한 날 한 시에 열반에 들게 되었다. 이 두 남매의 정을 기리기 위에 이 곳에 탑을 쌓고 두 남매의 사리를 모시고 남매탑이라 불렀다고 한단다.
<남매탑>
남매탑에서 잠시 쉬었다가 큰 배재를 거처 상신리로 내려와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추석 송편에 붙지 말라고 넣을 솔잎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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