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11월14일 과 15일 양일간 광주를 거처 화순과 순천을 여행했다. 화순읍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기 위해 길가의 식당을 살피며 차를 몰았다. 한 식당이 보여 차를 주차하고 식당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안에는 몇 몇의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남자 주인이 물을 가져다 주며 무엇을 먹을 것인지 주문을 받는다. 무엇이 맛있는지 추천해달라는 말에 불고기를 먹으란다. 불고기 백반을 주문하고 화순에서 갈볼 만한 곳을 묻자 화순 관광지도를 가져다준다. 우리의 옆에서 식사하던 사람이 경치 좋은 곳을 3군데를 추천해준다. 환산정, 물영정, 유마사다.
점심식사를 하고 맨 처음 환산정을 가보기로 했다. 화순 읍내를 벗어나 얼마가지 않아 저수지가 보인다. 저수지로 길게 뻗은 둑이 있고 둑이 끝나는 지점에 작은 정자가 하나 서 있다. 화순정이다. 얼핏 보니 정자가 서 있는 곳이 섬같다. 경치가 아름답다. 저수지 물가에 찻집으로 보이는 건물이 보인다. 건물 옆에 작은 공터가 있다.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저수지로 뻗어있는 둑을 걸어 정자로 다가갔다. 정자안으로 뻗어있는 둑길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고 길 양쪽으로는 벗나무, 버드나무 등 활엽수가 터널을 이룬다. 벗꽃이 필적이면 더욱 아름다울 것 같았다.
<환산정 길>
까페로 보이는 건물 옆 공터에 차를 주차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구경온 사람들이 없다. 찻집안에 두서너 명의 말소리가 들릴 뿐이다. 정자로 뻗어 있는 길을 걸어 들어갔다. 길 바로 옆 연못에는 시든 연잎이 연못 바닦에 찰싹 붙어있다. 물이 가독 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염정이 있는 작은 산에는 몇 개의 비석들이 자리잡고 있다. 두 개의 잘 생긴 소나무도 서 있다. 정자 앞에는 작은 문이 서 있다. 울타리는 없어도 정자에 오를 때 통과하는 문인가 보다. 정자는 낮으막한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돌계단을 거쳐야 오를 수 있었다. 정자 가운데에는 방처럼 꾸며져 있고 사방으로 문이 있으며 마루가 있다.
<환산정 앞 대문과 소나무>
정자 옆 비석에는 환산정(環山亭)은 조선조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함(柳涵)이 통곡하며 은거 생활을 위해 지은 정자로 그 후 계곡을 막아 서성제 호수가 형성되면서 호수 위에 떠 있는 섬 모양으로 자리하게 되었다는 기록들이 쓰여 있었다..
환산정 옆으로는 <백천재 류선생 유적비(百泉齋 柳先生 遺蹟碑)>라고 쓰인 비석이 서 있었다. 이 비석에는 "이 나라 이 겨레에 큰 일이 생겼을 때 匹夫(필부)의 身分(신분)이라 해서 결코 그대로 坐視(좌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해서 이러한 일은 또한 결코 쉬움은 아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이 적혀있는데 류함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82년 후손들이 세운 비석이란다.
<환산정>
환산정에서 바라본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저수지 건너에는 몇 채의 별장으로 보이는 멋진 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점심 먹을 때 식당에서 식당주인이 돈이 있으면 가서 별장을 사라던 말이 생각난다. 물과 산과 나무 그리고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환산정에서 바라본 풍경>
<환산정에서 바라본 풍경>
환산정에서 나와 물염정을 네비에 입력하고 차를 몰았다. 네비는 2차선 도로에서 나와 순천 보성 방향으로 길을 안내한다. 보성 방향으로 달리던 자동차는 4차선 도로를 벗어나 동북 방향으로 안내한다. 조금 달리니 호수가 보인다. 동북호라는 호수다. 붉은 색의 바위로 병풍을 친듯한 산이 마치 투구와 같은 모양이다. 산 마루에 흰색의 바위들이 보이는 백아산이 나타난다. 인터넷에서 백아산에 오르면 출렁다리가 있고 조망 경치도 매우 좋다는 이야기를 보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맥아산애 오르는 것은 포기했다. 멀리 무등산도 보인다. 백아산이 보일 무렵 백아산의 반대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동북호의 물가를 달린다. 동북호가 호수 주변의 단풍들과 어울러져 아름답다. 길가에 하얀 억새도 가을 경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차를 세우고 경치를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차를 주차할 곳을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다. 어느 덧 네비는 물염정에 다 왔다고 한다.
경사가 급한 언덕에 오르니 몇 개의 비가 서있고 정자가 보인다. 비석 앞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비를 살펴 본 다음 물염정으로 다가갔다. 물염정에 우리보다 조금 먼져 온 두 남자가 걸터 앉아 있어 물염정 뒤로 향했다. 물염정 뒤는 동북호로 흘러내려가는 동북천이라는 시냇물이다. 물염정 언덕에서 내려다 본 냇물은 부여의 낙화암보다도 더 경사가 급하다. 언덕 아래 시퍼런 물이 보인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닦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더 이상 걸어갈 길이 없어 다시 물염정 정자로 다가갔다. 물염정 위의 현판을 카메라에 담았다.
물염정(勿染亭)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373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로써 김삿갓이 생을 마치기 전에 아름다운 물염적벽의 풍광에 반해 자주 찾아와 시를 읊었다고 하여 더 유명한 곳이란다. 물염정은 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광주광역시관광협회와 무등일보가 공동으로 풍광이 수려하고 유서 깊은 광주 전남 8대 정자를 선정하였는데 그중에 첫번 째인 제1호가 바로 이 곳 화순에 위치한 물염정이란다. 나머지 7군데는 담양 식영정, 완도 세연정, 광주 호가정, 곡성 함허정, 나주 영모정, 영암 회사정, 장흥 부춘정이 란다.
물염정은 화순 적벽 중 한 곳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인데 물염은 세상 그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고 티없이 맑은 마음으로 살겠다는 뜻이란다.
<물염정 전경>
물염정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과 명종(재위 1545∼1567) 때에 성균관전적 및 구례·풍기군수를 역임했던 물염 송정순(宋庭筍)이 건립하였고, 송정순의 호를 따서 물염정(勿染亭)이라 하였단다. ‘물염’이란 ‘속세에 물들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물염정은 16세기 중엽(1566)에 건립한 정자로써 송정순(宋庭筍)이 후에 외손인 금성나씨(錦城羅氏) 나무송(羅茂松), 나무춘(羅茂春) 형제에게 이 정자를 물려주었다고 한다. 그내용이 적혀 있는 물현정 삼현선생 사적비가 서 있다.
<사적비>
<물염정>
현재의 물염정의 정자는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1966년과 1981년에 걸쳐 중수하였고, 1996년 지붕을 교체하였으며, 정자 내부에 조선 중·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들인 김인후(金麟厚)·이식(李栻)·권필(權韠)·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이 남긴 시문(詩文) 등 20개가 넘는 시문이 걸려있단다
<물염정 시문>
물염정이 있는 곳의 냇물 건너는 산으로 되어있는데 산 기슭 절벽은 붉은색의 돌로 층층이 쌓여있다. 이 절벽을 적벽이라 부른단다. 물염정의 빼어난 경관은 적벽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란다.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은 강원도 영월을 떠나 방랑하던 34세(1841년)가 되던 해에 처음으로 화순 땅을 밟았으며, 1850년에 두 번째로 화순을 찾았다고 한다. 김삿갓은 50세 되던 1857년에 아예 화순 동복에 안주하며 방랑생활을 마감하게 되는데, 이 때부터 김삿갓(김병연 1807~1863)이 물염정을 즐겨 찾았다고 한. 그런 연유로 하여 이 곳 물염정 근처에는 김삿갓의 동상과 함께 7폭의 시비(詩碑) 등이 조성되어 있다.
시비를 둘러보고 시비 아래 강가로 내려가볼까 생각했는데 철망이 쳐져있다. 물영적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왔다갔다 하는 동안 몇몇의 관광객들이 더 왔다.
<김싯갓 시비>
<적벽>
물염적벽은 화순의 다른 적벽들과 함께 참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 특히 화순적벽(和順赤壁)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50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개방이 되어 들어갈 수는 있지만 2주전에 예약을 하여야만 들어 갈 수 있단다. 적벽이란 말은 중국 양자강 상류의 적벽과 비슷하다고 이름 붙여진 것이란다.
<적벽 해설 판>
<물염 적벽>
<물염정 비>
물염정을 둘러보고 다음으로 간 곳은 유마사다. 네비에 유마사를 입력하고 차를 몰았다. 네비는 이서 방향으로 안내한다. 이서면에는 가로수에 뽕나무를 심었다. 길가에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그리 크지 않은 뽕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왜 뽕나무를 가로수로 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서면 사무소 소재지에 도착하니 뽕엿 공장이 보인다. 이서면애서는 뽕나무 엿을 특화 작물로 택한 모양이다.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그런지 동북호 물가에는 철조망이 처져있다. 멀리 물영절벽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적벽이 보이는데 차를 세울 곳이 없어 그냥 지나갔다.
<동북호>
프랑카드가 보이고 주차장에 몇 대의 차들이 보인다. 이 곳이 화순적벽으로 가는 주차장이다. 안내판에는 화순적벽에 들어가려면 2주전에 화순 군청 홈페이에 예약을 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이번 11월 12일 예약자 명단도 걸어 놓았다. 화순적벽에 직접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 채 되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화순 적벽 주차장>
4차선 도로로 다시 나온 차는 보성 방향으로 달리다. 왼쪽 모후산 유마사 방향으로 접어든다. 도로를 개설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2차선 도로 가운데 중앙 분리대에 200여m 정도 편백나무를 심어놓았다. 구불구불 계곡을 올라 유마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오르니 커다란 바위에 유마사라고 한자로 쓴 표지석이 서 있다. 표지석 주위의 붉은 단풍들이 정말로 아름답다. 유마사로 오르는 길 아래 계곡에 유마사 일주문이 보인다. 나는 계곡으로 내려가 일주문을 통과하여 사찰로 올라 갔다. 아내는 떨어져 있는 도토리를 줍기 위해 바쁘다. 계곡 물가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내려다 보니 남자 둘 여자 한 사람이 사진을 찍 위해 사진기를 들고 왔다 갔다 한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나보다며 절을 향해 올랐다.
<유마사 입구 단풍>
<유마사 표지석>
<모후산 등산 안내도>
<유마사 일주문>
일주문에서 조금 오르니 부도가 한 기가 서 있다. 유마사 해련부도라는 안내판도 서 있다. 유마사는 중국 당나라 사람 유마운이 창건햇다는 전설이 있단다. 그리고 통일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해련사라고도 했었단다. 부도는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놓은 것인데 이 부도는 팔각지대석 위에 안치한 전형적인 팔각원당형부도로 원래 절 입구 서쪽에 있었으나 1981년 현 위치로 옮겼단다. 부도는 해련 스님의 탑으로 보물 제1116호란다.
<유마사 해련부도>
유마사로 오르며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내려왔다. 모후산 휴양림에 오르려다 해가 저물어 포기하고 순천 버스터미널을 네비에 입력하고 차를 몰았다.
<모후산 유마사 계곡>
<모후산 유마사 계곡>
<모후산 유마사 계곡>
<유마사 전경>
<모후산 전경>
<유마사>
<유마사 계곡 단풍>
<유마사 계곡 단풍>
<유마사 계곡 단풍>
유마사 계곡에서 나와 4차선 도로를 달렸다 호수가 또 나타난다 주암호다. 서재필 기념관이란 곳에 차를 멈췄다. 이 곳은 보성땅이다. 서재필 기념관 주차장에 차를 멈추고 공원을 살펴보았다. 덩쿨 식물이 자랐던 터널을 따라 올라가니 여기 저기 조각품들이 보인다. 서재필 냄새는 한 곳도 나지 않는다. 무슨 서재필 기념관이 이렇게 생겼냐면서 주차장에 도착할 무렵 길을 건너는 육교가 보이고 독립문 모형이 보인다. 아차 우리가 온 곳은 서재필 기념관이 아니라 조각 공원이었던 것이다. 육교에 올라 기념관 쪽을 바라보았다. 여러 채의 건물이 보인다. 날이 저물어 기념관에 가지 못하고 육교 위에서 사진만 찍고 내려왔디.
<조각공원 덩쿨식물 터널>
<조각공원 휴게소>
<조각공원과 서재필 기념관을 잇는 육교>
<독립문>
<추모탑>
<조각공원 전경>
서재필 기념관 조각 공원 주차장을 벗어나 순천방향으로 오다가 고인돌 공원이 있는 곳에 도착해 들어가려다 그만 두고 순천시내에 도착하여 호텔에 방을 정한 후 호텔 주인의 안내로 TV에 여러 번 방영되었다는 식당에서 7,000원 하는 국밥으로 저녁을 먹고 감을 산 다음 호텔로 돌아와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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