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백두산, 고구려 유적지 여행 둘째날(압록강 유람선, 호산장성, 환인, 통화)

새터 노인 2014. 6. 10. 14:11

  2014년 6월 5일 여행 둘째날 7시에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7시 45분경 호텔을 출발하여 압록강변으로 갔다. 압록강변에 도착하니 그 유명한 철교가 있고 강건너 북한 땅이 보인다. 8시가 되어야 유람선에 오를 수 있으니 사진을 찍으라는 가이드의 말에 강과 철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 눈에 보아도 우리가 서 있는 중국쪽 단동과 북한쪽 신의주의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중국쪽 강변에는 고층 아파트와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고 지금도 개발이 한참이다. 반면에 북한 쪽에는 단층 건물 몇 채가 보이고 강변 갯벌에서 무었인가를 잡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압록강 철교는 6.25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걸어서 건너온 다리란다. 유엔군이 폭탄으로 끊은 뒤 지금 차가 다니는 철교는 다시 놓은 다리란다. 다리 위로 드믄드믄 차들이 오간다. 

 

<압록강 철교>

<유람선>

  8시가 되어 유람선에 올랐다. 다른 배에서인지 강가의 상인이 틀었는지 아리랑 노래가 압록강변에 울려퍼진다.  유람선에는 다른 팀이 먼저 타고 있었고 우리가 배에 오른 뒤에도 두 팀이 더 탄 뒤에 배는 서서히 출발했다. 유람선은 압록강의 상류로 나아가고 압록강 철교 밑을 지나 조금 오르더니 뱃머리를 돌려 다시 뒤돌아 철교 밑을 지나 하류로 간다. 선실보다 2층 갑판이 더욱 잘 보일 것 같아 2층에 올랐으나 햇볕이 너무 뜨겁다. 선실과 2층 갑판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었다. 단동시보다 북한쪽 신의주 쪽을 더욱 관심있게 살펴보았다. 우중충한 건물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모여 배구를 하고 있다. 위 옷을 벗고 배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북쪽 사람들에게 소리치며 손을 흔드는 몇몇의 관광객이 있으나 북쪽 사람들은 알아 들었는지 못 알아 들었는지,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건물에는 붉은 색 글씨의 김정은 선정문구가 붙어있다. 압록강에서 파낸 모래 자갈들이 보인다. 몇대의 화물선도 정박해 있다. 압록강 따라 흐르던 유람선은 위화도가 가까이 보이자 다시 뱃머리를 돌려 선착장을 향한다. 배 2층에서는 남녀 두사람이 호객 행위를 하며 물건을 팔고 있다. 수첩모양에 북한 돈을 넣어 4,000원에 판다. 북한 담배와 술 등도 팔고 있다. 망원경도 1,000원에 빌려 준단다. 니도 북한돈을 4,000원에 샀다. 실질적으로 얼마의 값어치가 있는지 모른다. 

 

<끊어진 다리>

 

<북한쪽 배구 놀이하는 사람들>

<북쪽 강변>

<북쪽 강변>

<북쪽 강변>

<압록강변 단동의 건물들>

<아래 위화도가 보임>

<배안에서 파는 북한 물건>

  9시경에 유람선에서 내려 호산산성을 향해 출발했다. 호산산성으로 가는 길가 도로변 주택지에는 2m 정도의 담이 처져있다. 이 담은 홍수 때 물이 주택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단다. 일제 시대 때 일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담으로 중간 중간에 끊어진 곳에는 길이 나있다. 홍수가 날 때는 담 사이에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단다. 우리가 달리는 길은 도로선이 그려져 있지 않았다. 도로 건설 때 부실 공사이기 때문에 수리가 많아 도로선을 그리지 않았단다. 중국의 운전기사들이 알아서 다닌단다. 압록강 상류를 따라 길을 달리는데 군인들이 분주히 강에서 움직이고 있는 여러 척의 배들을 연결하여 다리는 놓는 훈련을 하고 있다. 상류로 올라 갈수록 강폭은 더욱 좁아지고 물의 깊이도 얕아 자갈들이 강바닦에 많이 보인다. 바지를 걷고 걸어서도 건너 갈 수 있을 것 같다. 

  호산산성에 도착했다. 이 호산산성은 천리 장성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비사성이라 부른단다. 호산산성은 중국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동국공정 정책에 의해 만리 장성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고 있단다. 길가에 광장이 있고 만든지 얼마되지 않은 듯한 성모양의 건축물이 있고 건축물 군데군데 망루가 보인다. 다른 관광객들은 입장권을 사서 입장문으로 들어 가는데 우리는그냥 먼 곳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이 곳에서 500여m는 더 떨어진 곳에 바위 산이 있고 그 산에 성곽이 보이며 망루도 보인다.

 

<호산산성 입구>

<호산산성 입구>

  9시 30분경 호산산성을 출발한 버스는 환인을 향해 달린다. 산들이 많아 지고 굽은 길도 많아지면서 가이드는 중국의 장례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국은 법으로 매장은 하지 못하게 한단다. 대부분 화장을 한단다. 그리고 중국은 한 명의 자녀만 둘 수 있단다. 어느 동네인가를 지나는데 만원 버스가 지나간다. 차창가로 비차는 버스는 터질 것만 같다. 전에 어떤 사람이 등교 시간에 시내버스에 얼마나 탔는지 내리는 사람을 세어보니 200명이나 되더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10시가 넘어 고소도로에 접어든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린다.차창밖으로 이름 모르는 바위산이 보이는데 월출산 처럼 흰 바위들이 보인다. 대부분은 옥수수밭인데 드믄드믄 담배 밭도 보이며 담배를 심은 밭은 비닐을 덮기도 했다. 아마도 중국은 아직 비닐이 농사 짓는데 많이 쓰이지 않는 듯 하다. 한국은 대부분 밭에 비닐 씌워 잡초를 방제하고 있다. 하천도 매말라 물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하천은 정비가 되지 않아 하천변이 무너진 곳도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의 집들은 1자 모양의 집으로 지붕의 색깔도 거의 주황색을 띄고 있다. 조선족들의 집은 주황색이 아니고 벽 또한 흰색을 칠한다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에서 주황색의 지붕을 칠하면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한단다. 산들이 빙둘러 쌓인 분지  마을들도 보인다. 고속도로변에는 철조망이 보이는데  야생동물이 고속도로에 내려오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쳐 놓은 듯 하다. 우리나라도 고속도로는 철조망이 있지만 4차선 국도에는 철조망이 없어 도로를 오가다보면 고라니등 수많은 동물들이 차에 치어 죽은 것을 볼 수 있다. 4차선 국도도 운전자들이 속력을 내게 되어 있어 야생동물이 도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치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11시 30분쯤 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는 산속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 경치가 좋았다. 

      <휴게소>

  휴게소에서 잠시 쉬다가 버스에 올라 환인으로 출발했다. 환인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나라를 세운 곳으로 졸본성이 있는 곳이란다. 졸본성에 주몽이 나라를 세울 때 3000여명의 인구가 있었으며 이 곳의 흐르는 강의 이름이 비류수란다.  

  주몽은 해모수가 햇빛이 되어 나타나 유화에게 잉태시켜 알을 낳게 했는데, 여기서 태어난 것이 주몽(부여의 속어로 '활을 잘 쏜다'는 뜻)이라고 전해진단다. 주몽은 총명하고 활을 잘 쏘았고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佟佳江) 유역의 홀본(忽本 : 懷仁·桓仁)에 이르러 땅이 비옥하고 산천이 험준한 것을 보고 도읍으로 정했단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성을 고라 하니, 대략 BC 37년에 해당된단다. 당시 동가강 유역에는 여러 성읍국가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우세한 것이 비류국(沸流國 : 일명 多勿國)이었다. 주몽은 BC 36년 비류국의 왕인 송양(松讓)을 굴복시켜 합병했단다.

  환인이란 마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식당으로 향했다. 바람이 없고 햇빛이 내리쬐어 무덥다. 지형이 분지이기 때문에 그렇단다.  

 <해모수와 유화가 만났다는 동가강>

 <환인 마을> 

<식당벽의 오녀산성 그림>

  오녀산성은 우리나라에서는 흑승골성이라부른단다.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단다. 그런데 이번 관광 프로그램에는 조망관광으로 되어 있단다. 따라서 직접 오녀관광을 하려면 30달러의 돈을 더 내야 한단다. 즉 선택관광이란다. 우리들은 오녀산성에 으르기로하고 1인당 30달러를 수금하여 가이드에게 지급했다. 식당을 출발한 버스는 오녀산성  주창장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다. 매표소앞에는 염소로 보이는 조각상이 서있다. 매표소에서 나와 오녀산성박물관 내부로 들어갔다. 박물관에는 고구려의 유물들과 함께 고구려 주몽이 살았었다는 집의 모형 등 여러가지가 전시되어 있다. 

 <오녀산성 박물관 입구> 

 <주모이 살았다는 궁궐 재현 시설물>

 <고구려 시조 주몽비>

  오녀산성 박물관에서 나오니 산성으로 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 올라 산성이 있는 산으로 출발한다. 경사가 급한 포장된 도로를 버스는 잘도 달린다. 오녀 산성을 조망하기 좋은 곳에서 버스가 쉬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채 버스는 단숨에 자연석에 오녀산성이라 쓴 비가 서 있는 곳까지 올랐다. 그 곳에는 작은 가게가 하나 서 있다. 

 

 <오녀산성비 앞에서 우리 가족>

  이 곳에서부터 산성 정상까지는 999 계단 이란다. 언듯 보기에도 가파른 계단이다. 천천히 오르기로 하고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산을 오르는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지그재그식으로 만든 길도 있다. 우리가 오르는 길은 오녀산성 서문이란다. 나무 밑에서 자라고 있는 여러 가지 풀들을 살피면서 산을 올랐다. 산 정상에 오르자 물건을 파는 가게가 있다. 잠시 쉬자면서 가이드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눠준다. 아이스크림이라기보다. 아이스께끼라고 하는 편이 나을 듯 하다. 산성 위 나무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오녀산성 안내도> 

 <오녀산성에 오르는 계단>

 <오녀산성에 오르는 지그재그 우회 길>

 <서문>

 <궁궐지>

  산성 곳곳을 관람하기 위해 길을 걸었다. 맨 처음 본 것은 주몽의 궁궐이 있었다는 궁궐터다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다. 언듯 보기에 20평도 채 되지 않을 듯 하다. 궁궐터에서 조금 가니 조망하기 좋은 곳이다. 눈 앞에 저수지가 보이고 저수지와 낮으 ㄴ산들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조금 더 가면 더 좋은 곳이 나온단다.

 

 <저수지가 보이는 곳>

  조금가니 천지라는 작은 연못이 두 개가 있다. 한 연못에는 천지라는 붉은 글씨가 있고 한 연못에는 동전을 던져서 엽전안으로 들어가면 행운이 온다는 커다란 엽전이 연못속에 있다. 우리 일행들도 엽전을 던져본다. 나무에는 붉운 천들이 매여있는데 못 가의 한 가게에서는 이 천 조각을 팔고 있다. 자물쇠를 채우듯 붉은 천을 매면 사랑이 이루어진단다.  

 <동전 던지는 연못>

 <천지>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소원을 빌며 붉은 천을 맨단 나무>

  이 산에는 낮은 지붕을 한 곳들이 많이 보인다. 사람들이 살았던 주거지에 지붕을 만들어 빗물에 깍여 나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듯 하다. 낮은 지붕안에는 집을 짓기 위한 주춧돌 들이 있다. 이 곳이 사람들이 집을 지었던 집터다. 곳 곳에 이런 주거 시설이 있었다.

 

<주거터>

  산을 반쯤 돌았을까? 눈 앞에 장관이 펼쳐진다. 한국에서 보았던 붕어섬처럼 아르다운 광경이다. 호수 떠 있는 섬 푸른 땅이 함께 어루러져 장관이다.

 < 오녀산성에서 바라본 저수지>

  숲속의 길을 따라 걷다가 이제 산을 내려 가기로 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아찔한 계단이 보인다. 두명의 병사가 1000명의 적군을 물리칠수 있다는 좁은 바위 틈 사이에 계단이 있다. 바위 틈 양쪽에서 창을 들고 서 있다. 오르는 적군을 찌르기만 하면 된단다. 조심하면서 내려가란다.  

<좁은 바위 틈 사이에 마들어진 가파른 계단>

  가파른 돌 계단을 내려오면 거의 수직으로 되어있는 철계단이 나온다. 우회길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며 바위에 매달아 놓은 듯하다. 나는가파르지 않은 나무로 된길을 걸어 내려왔다.  

<수직의 철계단> 

 <나무로 만든 우회길>

  <나무로 만든 우회길>

  돌로 만든 길은 끝이 나고 이제 흙길이다. 이길은 왼쪽과 오룬쪽으로 갈라진다. 우리는 남문 방향인 오른쪽 길을 택했다. 조금 오니 연못이 있고 연못안에는 석고로 만든 ㄷ섯명의 선여상이 서있다. 이 곳에도 동전이 던져져 있다.    

<오녀지>

 흙길을 걸으며 성곽들을 감상했다. 한 곳에는 취나물도 많이 나있었다. 중국 사람들로 보이는관광객들이 떠들썩하다.남문으로 나 있는 길은 평탄하고 흙길이다. 곳곳에 돌로 쌓은 성곽들이 보인다. 남문을 도착하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버스를 타고 박물관이 있는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오녀산성 성곽>

  <남문 입구>

  4시 30분경 오녀산성에서 내려와 우리의 숙소가 있는 통화로 달렸다. 통화시는 60만 정도의 인구가 사는 곳으로 길림성에 속한단다. 통화시에 도착하여 한 식당에서 삼겹살로 저녁 식사를 했다.

<식당>

.   <동산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