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1일 12일 양일간 경주와 부산을 다녀왔다. 경천초등학교에 근무했을 때 직원들로 구성된 해오름이란 모임에서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했다.
2015년 4월 11일 아침 7시 30분에 공주 둔치 육교 아래에서 관광 버스에 올랐다. 유성 IC에서 고속도로에 접어든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옥천 휴게소와 건천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경주 시내에 접어들었다.
경주로 달리는 동안 차창밖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활작 핀 벚꽃과 나무 사이로 살짝 살짝 보이는 진달래 그리고 노란 개나리가 봄의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우리가 탄 버스가 경주IC를 나와 시내로 접어들자 도로 양변에 활짝 핀 벚꽂들이 경주 시내를 환하개 만든다. 기와 지붕의 톨게이트 건물을 통과하여 나오자 다리 양쪽 난간에 금색의 구조물이 서 있다. 서라벌을 상징하는 서라벌 치미다.
<서라벌 치미>
경주시내로 접어들면서 도로가 차들로 막힌다. 도로변에 심은 벚나무들은 만개해 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우리가 탄 버스는 경주시내를 통과하여 보문관광단지로 향한다. 경주국립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경주 불국사에 오가며 보았던 경치들이 보이고 맑은 호수를 끼고 있는 보문관광단지가 보인다. 여기 저기 놀이 시설과 숙발 시설이 보인다. 활짝 핀 벚꽃이 봄날의 운치를 더해준다.
<경주 박물관>
<벚꽃>
<도로변의 벚꽃>
버스는 보문 관광단지 호수변을 한 바퀴 돌아 경주 시내로 나왔다. 첨성대가 보이고 노란 유채밭도 보인다. 여기 저기 사람들이 봄의 정취를 즐기고 있다. 첨성대 뒷편에 왕의 행렬을 재현하고 있는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옛날 옷을 입고 행렬을 지어간다. 걸어가는 사람, 양산을 바쳐든 사람, 말을 탄 사람,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 호위하는 병사들이 무리를 지어간다. 차안에서 누군가 왕의 행렬은 아닌가 보단다. 사람의 수가 너무 적단다. 유채밭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벚꽃과 유채 밭>
<첨성대>
우리가 탄 버스는 첨성대가 보이는 근처 한 식당에서 멈췄다. 주차 안내원의 신호에 따라 차를 주차했다. 이풍녀 구로 쌉밥이란 간판을 단 식당이다. 주위에 경주 빵을 파는 가게들도 보인다. 식당 주차장에는 여러 대의 버스가 이미 와 있었다,.식당안은 넓었으며 기초적인 반찬이 차려져 있다. 한 번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단체로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를 안내한 식탁에도 많은 기본 반찬들이 이미 차려져 있다. 경주 보리빵도 있다. 보리빵 하나를 집어서 맞보았다. 맞이 구수하다. 종업원들이 몇 가지 반찬들을 나른다. 갖가지 쌈 채소로 음식을 싸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 잔을 마신 다음에 밖으로 나왔다. 식당 건물은 지붕이 한 옥식인데 햇볕이 잘 들어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유리 온실을 만들어 놓았다. 온실안에는 선인장을 비롯한 여러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풍녀 구로 쌈밥>
<점심 식탁>
<쌈밥집 건물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
점심식사를 하고 다음으로 간 곳은 토암산 너머에 있는 함월산 골굴사와 기림사다. 버스는 토암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지난다. 터널이 꽤 길어 통과하는데 한 참 걸린다. 터널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꽤나 큰 건물을 짓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호텔이나 콘도를 짓고 있는 것 같다. 4차선 도로를 벗어나 한 골짜기로 접어 들더니 주차장에 차를 먼춘다. 함월산 고굴사라 쓴 일주문이 보이고 시멘트 포장의 약간 경사진 오르막길이 눈앞에 나타난다. 길 오른쪽에 무술을 표현한 여러 조각상들이 줄지어 서있다. 갖가지 발동작과 손동작 등의 몸동작들이 힘이 넘쳐 보인다. 이 골굴사는 선무도가 유명하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한다. 전에 TV에서 소개된 적도 있다. 일주문을 통과하니 너른 마당이 있고 버스 한 대가 내려온다. 그 버스에서 내렸는지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한 건물안으로 들어간다. 선무도 화랑학교 교무실이란 안내판이 보인다. 아마도 선도도 수련을 위해 이 곳에 왔나보다.
<골굴사 일주문>
<선무도 모형>
<선무도 화랑학교 >
삼거리가 나타난다. 오른쪽길로 오르면 선무도 대학 왼쪽으로 오르면 골굴암이라는 이정표가 서 있고 선무도 수련원 숙소로 보이는 2층 건물이 있다. 선무도 공연 안내판이 있고 안내판 뒤에 석탑이 서 있다. 선무도 공연은 하루에 두번 오전 11시 30분과 오후 3시 30분 대적광전 뜰에서 한단다. 골굴암 방향으로 조금 오르면 넓은 마당이 있고 화장실이 있다.
<골굴암과 선무도대학 갈림길>
좀 오르니 눈 앞에 암자가 보이고 암자 옆에 움푹 움푹 파인 희색의 거대한 석벽이 나타난다. 석벽에는 철재로 난간을 해 놓았으며 비을 맞지 않도록 투명 지붕 모양의 구조물이 보인다.
이 절벽에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은 골굴암의 주존불로 동남쪽을 향한 약 4m의 높이에 새겨져 있으며 높다란 상투모양의 머리와 뚜렷한 얼굴, 가는 눈, 작은 입 좁고 긴 코의 독특한 이목구비와 얼굴 전체에 웃음을 띤 형채 등 9세기 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단다. 기림 사적기에는 골굴암에 12굴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단다.
<고굴암으로 오르는 길>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을 보기 위하여 절벽을 오르는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절벽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밧줄까지 매여 있다. 어떤 곳은 좁아 한 사람이 빠져 나가기 힘 들 정도의 좁은 길이 있다. 신중단이란 표지석이 서 있고 많은 사람들을 조각한 부조 조각물이 깊지 않은 굴 안 벽에 붙어 있다. 지장굴이란 표지석이 있는 굴안에는 여러 부쳐들이 모셔져 있으는데 중앙의 부처님은 다른 부처님들보다 크며 그 앞에는 촛대와 향로가 있으며 기도와 절을 할 수 있도록 나무 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마애여래 좌상이 있는 절벽>
<신중단>
<지장굴>
<관음전>
밧줄을 잡고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절벽 아래에 갔다. 높다란 상투모양의 머리와 뚜렷한 얼굴, 가는 눈, 작은 입 좁고 긴 코의 독특한 이목구비와 얼굴 전체에 웃음을 띤 형채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 아래에는 기도나 절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실제로 절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보인다.
<마애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을 뒤로 하고 칠성단이란 굴을 지나 절벽 아래로 내려왔다. 그냥 주차장으로 내려가려다 대적광전을 양해 올라갔다. 대적광전 앞 마당은 나무로 무대를 만들어 놓았다. 마당 주위에 연등이 걸려있고 여러 개의 의자들이 있다. 이 곳에서 선무도 공연을 하루에 두 번씩 하기 때문에 의자들이 있는가 보다. 대적광전 왼쪽 언덕에 탑이 하나 보인다. 오층탑이다. 5층 모양의 탑으로 기단 위에 둥근 공이 있고 바로 위에 석등이 있으며 그 위에 반원 모양이 있고 맨위에 둥근 모양의 돌이 얹어 있다.
<대적광전>
<오름탑>
주차장으로 내려오다 배가 부른 포대화상 동상 옆에 염주 목걸이를 한 개 동상을 보았다. 동아보살 공덕기 라는 설명판이 서 있다. 설명판에 의하면 이 개 동상은 동아라는 개로 겨울에 태어난 아이라 하여 동아라고 이름을 지었단다. 강아지 때부터 새벽 예불을 대중들과 함께 했으며 모든 행동이 예사롭지 않았단다. 참선을 하고 탑돌이를 따라하며 기도객들을 안내했단다. 동아는 살생을 전혀하지 않았으며 KBS, MBC, SBS 등 방송에서 여러 번 나왔단다. 이 개는 20여 차례 강아지를 분양하여 120여 만원을 사중에 보시하며 대적광전과 선무도 대학 건립에 공덕을 지었으며 유럽까지 분양되기도 했단다. 만년에 치매와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였으나 죽는날까지 예불에 참석하였다는 골굴사 주지가 쓴 안내판이 서 있다.
<동아보살>
골굴사를 나와 버스에 올라 기림사로 향했다. 기림사는 골굴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기림사는 문화재가 있는지 관람료를 받고 있다. 직원이 버스에 올라 인원과 65세 이상의 관람객을 살피고 내려간다.
함월산의 기슭에 있는 기림사는 불국사보다 앞서 지어졌고 한 때는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렸을 정도로 대단한 규모의 사찰이었단다. 기림사는 일제 강점기까지 31본산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불국사 말사로 귀속되어 있단다. 기림사와 골굴사를 품고 있는 함월산은 추령을 사이에 두고, 안개와 구름을 토하고 삼킨다는 토함산과 마주하여 솟아있는데 ‘함월’이라는 말은 달을 품은 산이라는 뜻으로, 달을 잘 담을 수 있는 둥글고 넓은 분지 가운데, 용이 날아오르고, 봉황이 춤추며, 신령스런 거북이가 물을 마신다는 영구 음수형의 명당자리에, 기림사라는 고즈넉한 사찰이 들어 앉아있단다.
기림사는 높은 석단을 사이에 두고 상단부와 하단부로 나누어지는데, 상단부는 근래 들어 조성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곳으로 삼천불전, 관음전, 범종각, 유물전시관, 요사채(화정당, 해행당, 백운당) 등이 있으며, 하단부는 창건 당시부터 이어져 오는 곳으로 일주문, 진남루, 대적광전, 응진전, 약사전, 삼층석탑 등이 있다.
사찰 내에는 국가지정 문화유산으로는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大寂光殿:보물 833호),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보물 415허), 대적광전내 삼존불(三尊佛:보물 958호), 비로자나불의 복장유물(보물 959호) 등이 있다.
<기림사 안내도>
<기림사 일주문>
<기림사로 오르는 길>
<천왕문>
<사천왕상
<종각>
<진남루>
<대적광전>
<응진전>
<약사전>
<관음전>
<삼천불전>
<기림사 경내>
기림사를 돌아보고 다음으로 간 곳은 토암산 석굴암이다. 이 석굴암은 여러번 왔었다. 석굴암 주차장은 산 등성이에 있어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일주문을 지나 석굴암으로 가는데 바람이 몹시 불어 밤에 배에 오를 때 추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디;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단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단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넙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란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단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단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단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단다.
특히 주실 안에 모시고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 하단다.
현재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단다.
<석굴암 일주문>
<석굴암 전경>
석굴암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석굴암을 돌아 보고 버스에 올라 부산으로 저녁식사를 하러갔다. 부산으로 가는 중에 도로가 엄청 막혀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다. 울산의 고속도로에 들어 갈 때까지 휴게소가 보이지 않아 도료변에 차를 세우고 볼일을 보기도 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장안휴게소에서 19,000월 하는 티를 하나 사 입었다. 저녁식사를 한 곳은 광안대교가 훤히 보이는 식당이었다. 저녁식사는 광어, 도미 등의 회로 했다.
<저녁 식사>
<유람선 선착장>
저녁식사를 마치고 유람선 선착장으로 향했다. 해운대에서 광안대교 아래를 돌아오는 코스로 요금은 22,000원이며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갑판 위에 의자에 앉아 부산의 야경을 관람했다. 건물과 광안대교의 불빛이 아름답다. 바람이 몹시 불었지만 참고 의자에 앉아 야경을 관람했다. 광안대교 밑을 통과하여 다시 해운대 유람선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중에는 1층 선실로 내려왔다. 1층 선실은 유리창이 있어 바람이 불지 않는다. 선실에서는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람선 관람을 마치고 여관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광안 대교>
<해운대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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