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경주 포항 첫째날(만불사, 대릉원, 첨성대, 안압지, 오릉) 여행

새터 노인 2015. 4. 27. 18:13

  2015년 4월 25일과 26일 양일간 경주와 포항에 다녀왔다. 세째 딸이 경주에 방을 예약해 놓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침 8시경 아내와 나는 대전으로 향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딸 내외를 태우고 경주로 향했다.

  옥천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대구를 지나 경산을 지나고 평사 휴게소가 가까워질 무렵 차가 털썩대면서 소리가 난다. 길이 굴곡이 심한가 하면서 자동차를 1차선으로 몰았다. 소리는 점점 더 심해진다. 속도를 줄이고 깜박이를 키고 평사휴게소로 향했다. 휴게소에서 정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보니 앞 바퀴 왼쪽 고무가 다 녹아버리고 말았다. 보험회사 긴급출동 서비스를 신청해 보려고 지갑을 뒤졌으나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딸이 찾아 주어 전화를 걸었다. ARS 전화로 몇번이가 시도하여 출동 서비스 안내를 받았다. 기사로부터 가스충전소와 주유소 사이로 차를 몰고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서서히 차를 몰아 지정된 장소로 갔다. 차에서 스페이어 타이어와 자키를 꺼내 자동차를 들고 바퀴의 나사를 풀으려 하였으나 잘 풀리지 않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긴급 출동 서비스 직원이 왔다. 스페이어 타이어로 금방 교환해 준다. 여기서 얼마 가지 않으면 영천IC가 나온단다. 영천에 가서 타이를 교환하란다. 자동차의 속도는 80/km이하로 달리란다. 

  영천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나와 영천 시내로 향했다. 사위가 타이어 뱅크를 인터넷에서 찾아 안내하는 대로 자동차를 달려 타이어 뱅크에서 앞바퀴 양쪽을 29만원에 갈았다. 

  영천에서 경주까지 일반 국도를 달려가기로 하고 첨성대 떡갈비를 네비에 입력하고 자동차를 몰았다. 달리는 도중 만불사 안내판이 나와 잠깐 다녀가기로 했다.  만불사는 공사가 한참이다. 먼지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잠시 멀물다 만불사를 나왔다.       

<만불사>

<만불사 부처>

  만불사를 나와 국도를 달려 네비가 가리키는 식당에 갔다. 차를 주차하고 내리자 커피 전문점 주인이 차를 대지 말란다. 식당에 간다고 하니 식당문을 닫은지 오래란다. 다시 차에 올라 대릉원 주차장에 주차하려고 하니 주차안내원이 만차란다. 안내원이 안내하는 대로 대릉원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대릉원 골목안에 약간 넓은 마당이 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대릉원 옆에 국수집이 보인다. 잔치국수 콩국수 칼국수 등을 판다. 콩국수로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대릉원을 관람했다. 2,000원하는 입장료를 지불하고 대릉원안으로 들어갔다. 이 곳 대릉원은 전에도 여러번 왔기 때문에 낯설지 않다.  

<대릉원 출입구>

  여기 저기 갓 피어난 어린 잎을 한 활엽수와 아름들이 소나무들이 봄내음을 일으킨다. 푸른 잔디가 덮혀있는 무덤들이 여기저기 크고 작은 산을 이루며 서 있다. 천마총 안으로 들어갔다. 이 천마총은 자작나무껍질에 채색으로 천마(天馬)를 그린 말다래[障泥:국보 제207호]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고 명명되었단다. 거대한 봉토로 덮인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으로서 봉토의 바닥지름은 47m, 높이는 12.7m에 달한단다. 무덤의 축조방법은 먼저 지면을 고른 뒤 바깥둘레돌[外護石]을 돌리고 그 안에 점토와 자갈을 다져쌓기[版築]해서 올린 후 여기에 덧널[木槨]을 동서방향으로 설치하고 덧널 주위에 돌무지를 쌓은 뒤 봉토를 씌운 방식을 취하고 있단다. 일반적인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와 유사하며 다만 덧널이 지면보다 위에 있는 점이 특기할 만하단다. 덧널 위와 주변에는 지름 23.6m, 높이 7.5m 가량 돌을 쌓고 표면에는 방수를 목적으로 점토를 발랐단다. 덧널 내부에는 강돌과 잔자갈로 석단(石壇)을 돌리고 그 위에는 유물을 배열했으며 석단의 내부에 길이 215cm, 너비 80cm 가량의 널[木棺]을 덧널의 장축방향에 맞추어 동서방향으로 안치했단다. 석단의 바깥쪽에는 널과 직교하여 남북방향으로 껴묻거리 상자를 놓았단다.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는 6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단다. 껴묻거리는 위치에 따라 봉토 내부, 덧널 상부, 널 주위의 석단 윗면, 널 내부, 껴묻거리 상자 등으로 구분된다. 봉토 내부의 유물로는 정상부 근처에서 마구류로 추정되는 금동판(金銅板)·미늘쇠[有刺利器]·쇠낫[鐵鎌]·쇠투겁창[鐵]·유리구슬[琉璃玉] 등이 출토되었단다. 덧널 상부 출토유물로는 쇠도끼[鐵斧]와 굽다리접시[高杯]·뚜껑접시[蓋杯]·목단지[長頸壺]·단지[短頸壺] 등의 토기류, 금제 굵은고리, 가는고리귀걸이, 유리구슬 등과 대형환두철봉(大形丸頭鐵棒)·환형철구(環形鐵具) 등이 있단다. 널 주위의 석단에는 동쪽에 관모(冠帽)·허리띠[帶]·띠드리개[腰佩] 등의 장신구류, 나머지 부분에는 무기와 마구류가 부장되어 있었단다. 널 내부에는 금관(金冠), 목걸이[頸飾], 금제허리띠[金製帶]와 띠드리개, 금제·은제 팔찌, 금제반지, 봉황환두대도(鳳凰環頭大刀) 등을 패용, 착용한 인물이 머리를 동쪽으로 향한 채 반듯이 눕혀져 있었단다. 껴묻거리 상자에는 다량의 유물이 들어 있었는데 뚜껑으로 생각되는 판재의 윗면에는 금제새날개모양관장식[金製鳥翼形冠飾]·금박편(金箔片)·금동관(金銅冠)·금동제관모(金銅製冠帽)·금동제정강이가리개[金銅製脛甲]등이 놓여 있었단다. 상자 안에서는 재갈[轡]·발걸이[鐙子]·말띠드리개[杏葉]·밑동쇠[座金具]·말띠꾸미개[雲珠]·청동말종방울[靑銅馬鐸]·안장틀[鞍橋]·말다래 등의 각종 마구류와 투구 1점이 상단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아래에는 세발솥[鼎], 자루솥[鐎斗], 다리미, 크고 작은 합(盒), 굽다리접시 등의 금속제용기와 유리용기, 각종 칠기류가 빽빽이 차 있었단다. 상자 아랫면은 4점의 쇠솥[鐵釜]이 받치고 있으며 쇠솥이 없는 곳에는 각종 토기류가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단다. 

  이런 유물들은 현재 경주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천마총안에는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은 모조품이란다.


<대릉원 숲>

<무덤들>

<천마총 입구>


  대릉원에서 나와 대릉원앞 가게에서 2인용 자전거를 빌렸다. 자전거 한 대에 10,000원을 받는다. 시간은 무한대란다. 자전거를 끌고 타고 하면서 반달성 방향으로 향했다. 왼쪽은 첨성대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오릉이 보인다. 첨성대 옆 광장에서는 무슨 행사를 하는지 하얀색의 텐트가 여러 개 쳐있다. 첨성대 앞에서 잠시 쉬어 사진을 찍었다.  

<오릉>

<첨성대>

  첨성대를 떠나 반달성으로 향했다. 반달성 아래 평평한 곳에 숲이 있는데 계림이라 부른다. 연녹색의 나무들이 숲을 이룬다. 계림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반달성으로 갔다. 반달성안에서는 발굴조사가 한참이다. 어름을 보관했던 석빙고 앞에서 아이스께끼를 사서 먹었다. 한 개에 1,000원을 받는다. 얼마나 얼었는지 입술이 쩍쩍 달라 붙는다.

<계림>

<석빙고>

<석빙고>

  석빙고에서 출발하여 다음으로 간 곳은 안압지다. 먼저 아이들과 왔을 때는 저녁에 와서 불빛과 건물과 물이 어울려 아주 환상적이었다. 오늘은 숙소에서 다시 오기 싫어 보고 가기로 했다. 딸과 사위보고 박물관에 다녀오라 하고 아내와 나는 안압지 연못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안압지>

<안압지>

<연못속의 잉어들>

  연못을 한 바퀴 돌아보고 시간이 있어 영상관에서 경주 동궁과 월지라는 영상을 감상했다. 문무왕 674년, 삼국을 통일하고 국력이 강해지면서 궁궐도 커지게 되어 신라 왕궁의 별궁이며, 태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안압지 남쪽에 신라 궁인 월성이 있어 이 곳까지 자연스럽게 커진 것으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란다.『삼국사기』에는 안압지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궁 안의 못'으로만 기록되어있단다. 1980년대‘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며, 본래 이름은 ‘달이 비치는 연못’이란 뜻의‘월지'라고 불렀단다. 이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 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묵객들이 연못을 보며‘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고 그 때부터 기러기 '안'자와 오리 '압'자를 써서 ‘안압지’로 불리게 되었다.

  안압지를 볼 때 주목할 만한 것은,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총 둘레 1000m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가장자리에 굴곡이 많아 어느 곳에서 보아도 연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란다.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신라인들의 세련된 창의성이 돋보이며,  못 안에는 동양의 신선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섬 세 개와 열두 봉우리를 만들었고, 물을 끌어들이는 입수 장치나 배수구 시설 또한 교묘하고 세심하단다. 또한, 신라 특유의 우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기와류, 화려한 금속 공예품들도 주목할 만하지만, 나무배와 나무로 만든 각종 건축 부자재, 나무편을 얇게 깎아 글을 기록한 목간 등도 매우 귀중한 생활 유물이란다. 이 곳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만 무려 3만여 점으로, 왕실과 귀족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였던 실생활용품이 대부분인데, 예술성이 뛰어난 명품 700여 점을 선별하여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관에 전시하고 있어 단일 유적지인 안압지에서 얼마나 대량으로 유물이 출토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단다.

  영상관에서 나와 대릉원쪽으로 가면서 길가에 신라영상관이 있어 영상관에서 신라에 대한 영상물을 감상했다. 찬란했던 신라에 대해 그래픽으로 만든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었다.

<반월성 아래 조성된 꽃밭>

<유채 꽃밭>

  대릉원 앞 자전거 보관소로 오면서 꽃밥을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은 뒤 대릉원 정문으로 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잠시 기다리는대 아이들이와 보문관광단지내에 있는 The-K호텔로 갔다. 호텔에 가방을 두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보문관광단지 내 놀이 공원 앞으로 갔다. 1인당 12,000원 하는 떡갈비로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놀이 공원 앞을 한 바퀴 돌고 호텔 방으로 돌아와 쉬었다.  


<숭혜문>